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멈춰 섰고, 그 반동에 안에 있던 사람들은 긴장 섞인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문이 열리자 양옆으로 문들이 끝없이 이어진 복도가 나타났습니다. 각 문에는 작은 창이 달려 있었는데 강남가라오케 , 그 창을 통해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TV 화면과 마이크, 그리고 분위기를 띄우는 반주 기계가 놓인 모습이었죠. 이곳은 평범한 술집이나 바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식 노래방이었는데, 강남에서는 이런 공간들이 층층이 쌓여 일반인들을 위한 작은 콘서트장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 몇 명과 함께 한 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려던 계획이었지만, 결국 다섯 시간이나 머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빌린 방은 아담했습니다. 좁은 공간 탓에 자신의 몸짓이나 목소리, 숨소리 하나하나를 의식하게 되는 그런 곳이었죠. 방 안에는 소파와 음료, 간단한 안주를 놓을 수 있을 정도 크기의 테이블이 있었고,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커다란 TV 화면이 있었습니다. 벽지는 한때는 화려했겠지만 지금은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찢어진 상태였습니다. 바닥 또한 작고 먼지 하나까지 다 보일 듯한 재질이었죠.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 바깥세상은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손님들, 인파, 한밤중 강남의 끊임없는 소음 등 모든 것이 희미한 웅성거림으로 변해 잊혔습니다. 오직 노래와 우리 자신만이 그곳에 있었고, 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 곡은 실수였습니다. 첫 곡이란 으레 그런 법이니까요. 우리는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그저 신나는 곡들을 골라 무작정 불렀고, 서로의 서툰 실력을 보며 농담을 주고받곤 했습니다. 점수는 고작 52점이 나오기 일쑤였고, 화면에는 한국어로 “더 노력하세요”라는 메시지가 뜨곤 했죠. 우리는 정말로 더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 하나가 발라드 곡을 불렀는데, 느리고 감정이 풍부한 그 노래를 부르는 친구의 진심 어린 모습에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친구는 훌륭한 가수였습니다. 평소에는 차분하고 묵묵히 일하며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친구였지만, 그 방 안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죠.
강남의 노래방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는 공간이죠. 사회적 관계가 복잡하고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는 세상에서, 노래방은 가면을 벗어던질 수 있는 귀한 공간입니다. 마음껏 과장해도, 음정이 좀 틀려도, 감정을 폭발시켜도, 혹은 아주 엉뚱하게 굴어도 괜찮습니다. 방음벽은 얇아서 옆방 사람들이 똑같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그 사실이 오히려 위안을 줍니다. 감정을 털어내고 싶은 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노래 한 곡, 또 한 곡을 부르며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게 됩니다. 그 작은 방 안에서 말이죠.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더욱 특별해졌습니다. 어린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 혹은 우리가 서로 좋아하는 줄조차 몰랐던 노래들을 함께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함께 노래를 불렀고, 가사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때조차 그 내용을 맞춰가며 노래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호흡을 맞춰야 하는 듀엣곡을 불렀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훌륭한 조화를 이루어냈습니다. 사람들은 우울한 노래를 부르며 그 속에 생기는 빈틈을 그대로 두었고, 누구도 그 빈틈을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TV 화면 속 점수는 크게 오르내리며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시간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점수나 순위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전부였습니다.